여러 업무를 해야하는 인하우스 마케터의 채용공고가 커뮤니티에서 비판을 받는 것을 많이 봤다.
댓글의 핵심은 대체로 비슷하다.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일을 기대하는 것 아니냐."
"연봉 한 7천은 주고 일 시키는거 맞나요?"
"마케팅 업무도 한 두가지가 아닌데 영상편집에 디자인까지... 노예 구함?"
나도 그 지적에 어느 정도 공감은 한다.
특히 마케터에게 디자인과 영상편집까지 요구하는 것은 분명 과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마케터에게 기본적인 디자인 감각이나 콘텐츠 이해도를 기대할 수는 있다. 브랜드 마케터라면 이미지의 톤앤매너를 볼 줄 알아야 하고, 콘텐츠의 흐름도 이해해야 하니까.
하지만 그것과 전문 디자이너, 전문 영상 편집자의 역할까지 당연하게 요구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공고에 적힌 툴을 보니 단순히 카드뉴스를 만들거나 짧은 영상을 가볍게 편집하는 수준이 아니라, 디자이너와 전문 영상 편집자가 다룰 법한 툴들이 적혀 있었다.
다만 나는 그 공고를 보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업무 범위가 넓다는 이유만으로, 그 공고를 무조건 나쁜 공고라고 볼 수 있을까?
작은 회사는 현실적으로 많은 사람을 뽑기 어렵다. 한 명은 광고만 보고, 한 명은 SNS만 보고, 한 명은 CRM만 보고, 한 명은 상세페이지만 보고, 한 명은 브랜딩만 보는 식으로 조직을 구성하기 어렵다.
그래서 초기 브랜드나 작은 조직에서는 스페셜리스트보다 제너럴리스트를 먼저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이건 어느 정도 현실적인 선택이다. 초기에는 특정 영역 하나만 깊게 파는 사람보다, 전체 흐름을 보고 우선순위를 잡고 실행까지 끌고 갈 수 있는 사람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브랜드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고객이 어디서 이탈하는지, 상세페이지를 먼저 고쳐야 하는지, 광고 소재를 바꿔야 하는지, 콘텐츠 방향을 다시 잡아야 하는지, CRM으로 재구매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지.
이런 것을 넓게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스페셜리스트는 회사가 어느 정도 커진 다음에 뽑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모든 일을 깊게 다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브랜드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보고,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판단하고, 각각의 실행을 하나의 방향으로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제너럴리스트’라는 역할 자체를 좋아한다. 내가 그렇기도 하고.
다만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채용 전략은 현실적이어야 한다. 신입에게 이런 역할을 기대하면 무리다. 브랜딩, 콘텐츠, 상세페이지, 광고, CRM, BX를 모두 보고, 우선순위를 잡고, 실행까지 해내는 일은 단순히 손이 빠르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의 실무 경험과 판단력이 필요하다. 최소 팀장이나 임원급 역할로 뽑는 것이 맞다. 아니면 신입 마케터와 적절한 외주를 함께 두는 방식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
회사 입장에서는 비용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경험이 부족한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판단과 실행을 동시에 맡기면, 결국 회사도 원하는 성과를 얻기 어렵다. 사람은 지치고, 일은 흩어지고, 브랜드는 방향을 잃는다.
그리고 나는 업무 범위가 넓다고 해서 무조건 일이 많아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을 진짜 지치게 하는 것은 업무의 개수보다 일하는 구조다. 불필요한 커뮤니케이션, 느린 의사결정, 책임은 있는데 권한은 없는 구조, 보여주기식 보고서, 비효율적인 업무 방식 등.
이런 환경에서는 업무 범위가 좁아도 야근하게 된다.
반대로 업무 범위가 넓어도 의사결정이 빠르고, 자율성이 있고, 개인의 의견이 존중되고, 필요한 도구가 지원되는 조직이라면 생각보다 훨씬 덜 힘들다.정말 힘든건 단순히 '많은 업무 범위'가 아니다.
나 역시 지금 브랜딩, 콘텐츠, 상세페이지, BX, 콘텐츠, CRM, 광고 등 여러 업무를 하고 있다.
겉으로 보면 업무 범위가 넓어 보일 수 있지만, 나는 이것들이 전부 따로 떨어진 일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마케터라면 당연히 모두 신경써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것들은 하나의 목표로 연결되어 있다.
브랜드를 성장시키는 일.

브랜드의 메시지를 정리하고, 고객이 구매해야 할 이유를 만들고, 상세페이지에서 설득하고, 콘텐츠로 관계를 만들고, 광고 소재로 발견되게 하고, CRM으로 다시 이어지게 만드는 일.
각각의 업무 이름은 다르지만, 결국 하나의 브랜드 경험을 만드는 과정이다.
회사가 브랜드 마케터에게 넓은 역할을 기대한다면, 그 사람을 단순한 잡무 처리 담당자로 보면 안 된다.
브랜드의 방향을 함께 보고, 고객 경험을 연결하고, 매출과 메시지를 함께 고민하는 사람으로 대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맞는 지원도 필요하다. ChatGPT, 클로드, 캔바, 미드저니 같은 생성형 AI 도구는 개인의 사치가 아니라 업무 생산성을 높이는 장비에 가깝다. 회사가 더 빠른 실행과 더 좋은 결과물을 원한다면, 그에 필요한 도구를 지원하는 것이 당연하다. 디자이너에게 어도비 결제도 안 해주는 회사가 생각보다 많다고 한다. 통탄할 일이다.
좋은 제너럴리스트를 원한다면 회사도 그 사람이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제너럴리스트 채용이 아니라, 한 사람에게 여러 사람 몫의 일을 떠넘기는 것일 뿐이다. 말 그대로 노예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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