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전문학을 좋아하는 동생에게 추천받아 읽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요즘 들어 소설을 좋아하게 되긴 했지만, 고전은 뭔가 어려울 것 같아 도전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동생이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내 취향일 것 같다고 해서 읽게 된 작품이다.
책에 미치게 된 지는 이제 겨우 9개월 남짓이고, 꾸준히 독서를 해 온 것도 3년이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전문학에는 완전히 문외한이었다. <폭풍의 언덕>은 독서 좀 한다는 사람들은 이미 두 번, 세 번 이상 읽기도 하는 작품이고, 에밀리 브론테 역시 워낙 유명한 작가였다.
나는 이 책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읽었다. 책을 다 읽고 후기를 찾아봤을 때는 하나같이 '미친 남녀의 치정극' 정도로 언급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나는 좀 다른 생각을 했다. 내가 엄마이기도 하고 직업이 마케터라서 그런가. 다른 각도에서 인물들을 해석하고 분석하게 됐다.
캐서린이 히스클리프를 사랑하면서도 그를 부끄러워하는 장면을 보면서는 성능에는 만족하지만 남들 앞에서는 꺼내기 싫은 제품을 대했던 나의 태도가 떠올랐다.
사람은 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부끄러워할까. 왜 실제 만족보다 타인의 평가를 더 중요하게 여길까.
그리고 한 사람을 망가뜨린 환경은 어떻게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까.
나에게 이 작품은 사랑과 복수에 관한 소설이라기보다 욕망과 계급, 아동학대와 교육, 그리고 인간의 모순된 심리에 관한 이야기로 읽혔다.
1. 캐서린이 남편을 고르는 방식
캐서린이 에드거를 선택하며 내세우는 이유는 대부분 조건이다.
잘생겼고 부유하며 교양이 있다. 무엇보다 남들이 보기에도 자신과 잘 어울리는 남자다.
반대로 히스클리프와 결혼하면 자신까지 천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자기 감정보다 그 선택을 한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다.
사람은 물건의 효용만 사지 않는다. 그것을 사용하는 자신의 모습도 함께 산다.
브랜딩과 마케팅을 하는 사람이라면 매일 같이 이야기 하는 것들이 이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캐서린이 히스클리프를 부끄러워하기 시작한 시점이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라는 우아한 저택에서 몇 주를 보내고 돌아온 뒤다.히스클리프는 달라진 것이 없다. 그가 전보다 초라해진 것도, 갑자기 더 거칠어진 것도 아니다.
달라진 것은 캐서린의 비교 기준 뿐이었다.
이전에는 몰랐던 세계를 본 뒤부터 원래의 세계가 초라해 보이기 시작했다.
브랜드가 어느 날 갑자기 촌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대개 그 브랜드가 변했기 때문은 아니다.
더 세련된 비교 대상이 소비자의 머릿속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사람은 절대적인 기준으로 욕망하지 않는다. 비교를 통해 욕망한다.
2. 정체성은 선언이 아니라 행동이다
캐서린은 "내가 곧 히스클리프"라고 말한다. 브랜드로 치면 강력한 정체성 선언이다.
하지만 브랜드의 정체성은 무엇이라고 선언했느냐보다 어떻게 행동해 왔느냐에 가깝다. 아무리 좋은 말을 반복해도 행동이 다르면 그것은 정체성이 아니라 슬로건일 뿐이다.
그 기준에서 보면 캐서린의 말도 선언에 가깝다. 그녀는 히스클리프를 자기 존재의 일부라고 말하면서 그를 부끄러워한다. 다른 남자와 결혼하면서도 히스클리프를 놓지 않으려 한다.
자기가 남들에게 숨기고 싶은 대상을 자기 정체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마 캐서린 안에는 서로 충돌하는 두 개의 자아가 있었을 것이다.
황무지를 자유롭게 뛰어다니던 자신과 우아한 저택의 안주인이 되고 싶은 자신.
둘 다 진짜였고 어느 쪽도 버릴 수 없었다.
모두에게 사랑 받으려고 하는 브랜드가 어떻게 되는지, 브랜드 마케터인 나는 너무 잘 안다.
결국 누구에게도 사랑받기 어렵다.
캐서린이 무너진 것은 단순히 잘못된 선택을 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선택한 뒤에도 선택하지 않은 삶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3. 만족하는 고객이 모두 팬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성능에는 만족하지만 남들 앞에서 "나 이거 쓴다"고 당당하게 말하기는 꺼려지는 브랜드가 있다.
만족도 조사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고 재구매율도 높은데, 좀처럼 입소문은 나지 않는다.
고객은 제품을 계속 선택하지만 자신의 취향을 걸고 다른 사람에게 권하지는 않는다.
캐서린이 히스클리프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이런 소비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물론 사람을 사랑하는 일과 브랜드를 소비하는 일은 같지 않다.
연인이나 친구를 남들에게 자랑하고 추천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자신에게는 분명 소중한데 타인의 시선 때문에 그 가치를 드러내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둘이 닮아 있었다.
캐서린은 히스클리프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안다. 누구보다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면서도 그 관계를 사회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부끄러워한다.
브랜드에서도 만족과 추천 사이에는 비슷한 간극이 생긴다.
충성고객이라고 해서 반드시 팬인 것은 아니다. 충성고객은 계속 구매하고 이용하지만, 팬은 구매하지 않는 순간에도 브랜드를 이야기한다. 자신의 취향을 걸고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며 자연스럽게 입소문을 만든다.
그러니 만족도와 재구매율만 봐서는 놓치는 것들이 많다. 고객이 좋아하면서도 왜 추천하지 않는지, 계속 사용하면서도 왜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지는 다른 문제이다.
4. 두 집은 서로 다른 세계를 판다
워더링 하이츠와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 이름만 들어도 결이 다르다.
하나는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언덕 위의 집이고, 다른 하나는 정원과 안락함을 갖춘 계곡 아래의 저택이다.
이 소설에서는 누가 어느 집에 있느냐가 곧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와 태도를 보여 준다.
캐서린은 워더링 하이츠에서는 들판을 뛰어다니지만 그레인지에서는 얌전한 숙녀처럼 행동한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공간에 맞춰 자신을 바꾼다.
브랜드가 공간에 돈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매장이든 사무실이든 웹사이트든, 사람은 어떤 공간에 들어가는 순간 그곳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행동을 조정한다.
공간은 제품을 담는 그릇에 그치지 않는다. 그 안에 들어온 사람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은근히 제안한다.
그레인지는 캐서린에게 새로운 생활만 보여 준 것이 아니다. 그곳에 어울리는 새로운 자아를 보여 줬다.
그 경험 이후 워더링 하이츠와 히스클리프는 예전과 같을 수 없었다.
에밀리 브론테가 소설의 제목을 인물이 아니라 집의 이름으로 붙였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이 이야기에서는 개인의 의지만큼이나 그를 둘러싼 환경이 중요하다.
사람보다 그 사람이 속한 세계가 먼저 말한다.
5. 학대는 끔찍한 방식으로 반복된다
히스클리프가 복수에 집착하게 된 이유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입양아였던 그는 자신을 편애하던 언쇼 씨가 죽은 뒤 힌들리에게 지속적으로 학대당한다.
가족의 일원에서 하인으로 추락하고 교육받을 기회도 빼앗긴다.
가장 믿었던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와 함께하면 자신이 천해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문제는 그가 복수하는 방식이다.
힌들리가 자신에게 했던 일을 힌들리의 아들 헤어턴에게 그대로 되풀이한다.
헤어턴을 하인처럼 키우고 교육받지 못하게 한다. 자신에게서 빼앗긴 것을 되찾는 대신 아무 잘못 없는 아이에게서 같은 것을 빼앗는다.
히스클리프가 가장 증오했던 사람은 힌들리였지만, 복수가 완성될수록 그는 힌들리와 닮아 간다.
학대의 무서운 점은 고통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것은 때때로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학습된다. 피해자가 과거의 폭력을 반복하면서 이번에는 자신이 통제권을 쥔다.
불우한 어린 시절이 이후의 폭력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다만 한 사람이 어떤 과정을 거쳐 자신이 가장 싫어하던 모습이 되는지는 설명해 준다.
히스클리프가 불쌍하다는 사실과 그가 끔찍한 가해자라는 사실은 동시에 참이다.
인간을 이해하는 일과 용서하는 일은 같지 않다.
6. 히스클리프가 빼앗은 것을 캐시가 돌려준다
캐시와 헤어턴은 이전 세대와 비슷한 관계에 놓여있다.
캐시는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헤어턴을 무시한다. 헤어턴은 자신을 무시하는 캐시에게 거칠게 반응한다. 사랑과 모욕, 자존심이 뒤섞였다는 점에서는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관계가 반복되는 듯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다른 결말을 만든다. 그 변화를 가능하게 한 것이 교육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히스클리프가 복수를 위해 헤어턴에게서 빼앗은 것이 교육이었다면, 캐시는 그 교육을 다시 돌려준다.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먼저 손을 내민다. 책을 건네고 글을 가르쳐 준다.
교육은 여기서 단순히 글자를 읽는 능력이 아니다.
상대를 열등한 존재로 고정하지 않는 태도다. 지금의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고 믿는 일이다.
히스클리프는 헤어턴을 과거의 자신과 같은 자리에 가둬 놓았다.
캐시는 그에게 다른 사람이 될 가능성을 돌려준다.
안정적인 사랑을 받고 자란 경험도 중요해 보였다.
에드거에게 사랑받으며 자란 캐시는 납치와 협박을 당하고 강제로 결혼까지 하지만 자기 자신을 완전히 잃지는 않는다.
캐시 역시 처음부터 성숙한 인물은 아니다. 헤어턴을 무시하고 상처를 준다.
그래도 잘못을 깨닫고 먼저 관계를 바꾼다.
사랑과 교육은 사람을 절대 망가지지 않게 보호하는 방패는 아니지만, 대신 무너진 뒤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올 힘을 남겨 줄 수 있다.
7. 오디언스가 싫어할만한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마케터로서 가장 많은 인사이트를 얻은 것은 이야기의 전달 방식이었다.
브론테가 다룬 것은 당대 영국 사회가 불편해할 만한 내용이었다. 출신과 계급이 사람을 어떻게 갈라놓는지, 학대와 방치가 아이를 어떤 어른으로 만드는지, 사랑이 얼마나 폭력적인 소유욕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이는 직접적으로 주장하기에 당시 사회와 사람들에게 너무 큰 반발을 일으킬만한 소재였다.
그래서 브론테는 먼저 록우드라는 외부인을 세워 독자 대신 당황하게 한다. 독자는 이 낯선 방문자와 함께 워더링 하이츠에 들어간다. 그다음에는 넬리라는 가정부의 목소리를 빌린다. 독자는 그녀의 설명에 기대어 복잡한 과거를 따라간다. 히스클리프의 악행을 본격적으로 보여 주기 전에는 아무도 없는 방에서 창문을 열고 캐서린을 부르며 우는 모습을 먼저 보여 준다. 그 장면을 본 독자는 이후 그가 어떤 끔찍한 행동을 하더라도 판단을 잠시 미루게 된다.
그런데 브론테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독자가 의지하도록 만든 넬리를 계속 틀리게 한다. 넬리는 캐서린이 정신적으로 무너질 때 꾀병이라고 생각하고, 린턴이 아플 때도 응석이라고 판단한다. 두 번 모두 틀렸으며 그 오판은 상황을 악화시킨다.
안전장치에 일부러 균열을 넣은 셈이다.
완충재가 완벽하면 독자는 편안하게 읽고 잊어버린다. 불편함을 남기려면 끝내 기댈 곳이 없어야 한다.
독자가 스스로 판단하게 만들어야 한다.
나는 마케터로서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매력적으로 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해왔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고 난 후에 생각하게 된 점은 조금 달랐다.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낄만한 메시지를 어떻게 조금이라도 흥미롭게 전달할 수 있을까'
너무 직접적으로 우리 제품을 어필하는 것은 거부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
반대로 지나치게 부드럽게 다듬으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낯선 독자를 이야기 안으로 데려오되, 그가 스토리에 홀려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폭풍의 언덕>은 사랑이라는 익숙한 소재로 그 안에서 계급과 욕망, 학대와 교육의 문제를 만나게 한다.
그리고 피해자와 가해자, 사랑과 폭력, 연민과 혐오를 깔끔하게 나누려는 독자의 판단을 계속 흔든다.
사랑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람.
학대받은 뒤 똑같은 방식으로 타인을 학대하는 사람.
상대를 사랑한다면서 자기 뜻대로 소유하려는 사람.
누군가를 잘못 판단하고도 자신이 상식적이라고 믿는 사람.
이 소설의 인물들이 불편한 이유는 그저 이상해서가 아니라, 어딘가 우리와 닮았기 때문인 것 같다.
브론테는 약 180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람들의 기억속에 오래 남는 이야기는 정답을 알려 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이 믿어 온 정답을 의심하게 만드는 이야기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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