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천재성과 도덕적 결함, 그 사이의 온도 차

클래식 연주자들의 여러 이슈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칭송하는 전설적인 음악가들인 리스트, 바그너, 드뷔시, 푸치니 등.

음악사를 조금만 들여다봐도 이들의 사생활은 놀라울 정도로 파란만장했다.

불륜, 가스라이팅, 무책임한 관계들. 지금 기준은 물론 당시 기준으로도 충분히 비난받을 행동들이 많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들의 작품을 연주하고 소비한다.
결국 역사 속에서 “작품은 죄가 없다”는 논리는 꽤 관대하게 작동해왔던 셈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예술가들에게는 훨씬 더 즉각적이고 잔혹한 잣대가 들이대어지는 걸까.

몇 년째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피아니스트 임동혁 씨만 봐도 그렇다.
커뮤니티에 전처의 폭로글이 올라오자 대중은 순식간에 날 선 비난을 쏟아냈다. 물론 도덕적 문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때로는 폭로 하나만으로 한 사람을 완전히 사회적으로 매장해버리는 여론의 속도가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연예인들의 비극을 지켜봐 왔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한쪽의 이야기만으로 모든 것을 단정 짓는 일 앞에서 조금 조심스러워진다.
최근 그가 올렸던 자살 암시 글이나 입장문을 보면서도, 관계라는 건 결국 당사자들만이 아는 영역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임동혁 씨의 사건을 보면서 내가 좋아했던 연예인 중 한명인 박유천을 떠올리게 된다.
나 역시 동방신기의 팬이었고, 그의 행보에는 인간적으로 큰 실망을 느꼈다. 지금은 그의 어떤 활동도 소비하지 않는다. 연예인은 결국 이미지와 신뢰를 기반으로 사랑받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런데도 여전히 박유천의 목소리가 나오는 동방신기의 음악은 내 플레이리스트에 자리하고 있다.
그건 인간 박유천을 추억하는 것이 아니며, 내 10대를 함께 지나온 동방신기라는 그룹을 추억하는 것 뿐이다. 그 음악은 누군가의 인격 이전에, 울고 웃었던 내 청춘의 일부이기도 하니까.


그래서인지 조성진이나 임윤찬 같은 연주자들이 별다른 구설 없이 묵묵히 음악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팬들에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관객이 음악에만 온전히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어쩌면 그것이 지금 시대의 예술가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배려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조성진과 임윤찬은 단지 연주를 잘해서 그토록 사랑을 받는 것은 아니다. 팬들은 그들의 음악뿐 아니라 태도와 인성(실제로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바른 청년 이미지니까)까지 함께 사랑한다.
그래서 만약 이들이 도덕적·윤리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 배신감과 역풍은 다른 연주자들보다 훨씬 더 거셀 것이다.

음.. 그런데 글을 쓰다보니 뭔가 앞뒤가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과거의 거장들에게는 비교적 관대하고 싶어 하면서, 내 추억 속 음악은 지키고 싶어 하면서도, 지금의 스타들에게는 훨씬 더 높은 도덕성과 완전함을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는 임동혁 씨의 사생활 논란에 크게 분노하거나, 그다지 실망하지 않았다.

아마 그의 성격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콩쿠르 수상 거부 사건이나 평소의 솔직하고 예민한 언행들, 그간 주변 관계자들로부터 들어왔던 그에 대한 썰들. 나는 이미 그의 불안정함과 인간적인 결함까지도 하나의 페르소나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같다.

이 과정에서 나는 또 흥미롭게, 마케팅 관점에서 생각해보게 된다. 브랜드는 소비자가 기대하는 핵심 가치와 실제 이미지가 충돌할 때 가장 큰 타격을 입는다는 것.

조성진과 임윤찬의 브랜드가 '순수함', '구도자적 태도, '클린하고 하이엔드한 이미지'에 가깝다면, 아주 작은 윤리적 결함만으로도 브랜드 정체성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반면 임동혁 씨는 이미 '예민함', '날것의 인간성', '결함까지 드러내는 솔직함'을 포함한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스캔들이 터졌을 때도 나는 그것을 완전히 예상 밖의 붕괴라기보다, 이미 인지하고 있던 이미지의 연장선처럼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어쩌면 이 모순이야말로 우리가 예술을 인간의 영역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

예술가는 신이 아니기에 실망하고, 그럼에도 그가 만든 세계가 너무 아름다워 차마 버리지 못하는 그 복잡한 마음 말이다.

우리는 결국 작품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을 만든 인간의 결함과 매혹까지 함께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추신: 도덕적, 윤리적으로 문제 있는 예술가의 작품을 소비해서는 안된다면, 애초에 거기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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