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한 편을 보는 것과 소설 한 권을 읽는 것.
교양 유튜브를 보는 것과 인문학 책을 읽는 것.
한두 번의 경험만으로는 별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경험이 꾸준히 쌓이면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가리지 않고 읽는다. 그러다 보면 알게 된다. 어느 것 하나 '절대적으로 독립된' 학문은 없다는 것을. 이 학문에서 배운 개념을 저 학문에서도 만나고, 전혀 관계없어 보이던 분야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발견하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학문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물론 다른 방법으로도 여러 분야의 지식을 쌓다 보면 알게 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경험을 책에서 더 많이 했다. 특히 한 가지 주제를 깊이 다루는 책에서는 여러 학문이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좋은 책의 저자는 한 주제를 몇 년씩 파고들면서 여러 분야를 오가며 생각을 이어 놓는다.
사회학 책에 심리학 실험이 나오고, 경제학 책에 진화생물학이 등장한다. 교양 유튜브는 대체로 정리된 답을 전달하지만, 책은 그 답이 어디서 왔는지를 보여준다. 저자가 이어 놓은 길을 따라 걸으며 연결하는 법을 배운다.
그런 책을 여러 권 읽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직접 연결하기 시작한다. 예전에 읽었던 책의 개념이 다른 책을 읽다가 떠오르고, 서로 다른 분야에서 배운 지식들이 하나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 쓰인다.
그러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넓어진다. 시야가 달라지니 일도 더 잘 하게 됐다. 작은 것에만 집중하느라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 장님이 코끼리 다리만 만지던 것처럼 알 수 없었던 세계를, 여러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코끼리 전체로 볼 수 있게 된다.
이런 연결이 학문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나는 소설을 읽을 때,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인물의 심리를 분석하거나, 인상적인 문장을 모으곤 한다.
직업병이 있어서 소설 속 인물들의 행동에서 마케팅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저자의 표현법에서 카피 재료를 얻기도 한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이런 경험을 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영화는 정해진 속도로 장면이 흘러간다. 반면 책은 내 페이스대로 속도를 조절하며 읽을 수 있다. 문장 하나에 오래 머무르기도 하고, 상상력을 마음껏 펼치거나, 이쪽저쪽 전혀 상관없는 생각을 자유롭게 하다가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
물론 영상도 멈추고 되감으며 볼 수 있다. 하지만 영상은 흘러가는 게 기본값이라 일부러 거슬러야 하고, 책은 내가 넘기지 않으면 멈춰 있는 게 기본값이다.
나는 이 차이가 꽤 크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다가 멈춰서 다른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내가 읽은 내용과 이전에 알고 있던 것들이 연결되기 때문이다.
책은 그냥 취미 아니냐, 재밌어서 보는 거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독서가 재미는 있다. 그런데 늘 재미만으로 읽는 것은 아니다. 읽기 싫어도, 집중이 잘 안 되어도 마음의 근육을 키우기 위해 읽을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이해되지 않는 문장을 다시 읽고, 낯선 개념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내 생각과 다른 주장에 대해서도 한참을 고민한다. 이런 과정 자체가 나에게는 하나의 훈련이기도 하다.
꾸준히 운동하는 사람을 보고는 그냥 재밌어서 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왜 독서는 재미로만 한다고 생각할까? 꾸준하게 독서 습관을 가진 사람들도 대단한 사람들이다. 독서 역시 시간과 노력, 꾸준함이 필요한 일이니까.
책은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일 뿐, 특별할 게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다른 매체로도 지식을 얻고 사고를 확장할 수 있다. 나 역시 책으로만 무언가를 배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보를 얻는 것과 그 정보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정말 같을까?
내가 독서를 통해 얻는 것은 단순히 책에 담긴 정보만이 아니다.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다가 멈추고, 의심하고, 다른 분야에서 배운 지식을 떠올리고, 전혀 관계없던 것들을 연결하는 경험이다.
그리고 이런 경험이 수년간 쌓이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야도 조금씩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책이 정보를 전달하는 여러 매체 중 하나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꾸준한 독서가 만들어 내는 차이까지 별것 아닌 것으로 취급할 수 있을까.
독서의 가치를 낮게 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속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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