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은 행복을 철학이 아니라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책이다. 행복은 인간이 생존하고 번식하도록 진화가 설계한 장치이고, 그래서 행복의 핵심은 거창한 성취가 아니라 기쁨을 자주 느끼는 데 있다고 말한다.
읽는 내내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다. 행복이 생각이 아니라 경험이라는 것, 결국 사람이 가장 큰 기쁨이라는 것, 남의 눈을 의식할수록 행복에서 멀어진다는 것.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너무나도 공감이 갔다.
그런데 딱 한 대목에서는 마음이 불편했다. "행복은 조건에 달려 있지 않다."
이 글은 그 한 대목에 반박하며 읽다가, 결국 저자와 같은 결론에 닿은 기록이다.
<행복의 기원>은 행복을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행복의 기원>의 결론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행복은 기쁨의 크기(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저자의 출발점은 진화다. 우리 뇌는 살벌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은 조상들이 물려준 생존 지침서다. 고기를 씹을 때, 사람과 살이 닿을 때 느낌이 좋았던 조상들이 그 느낌을 또 느끼려고 사냥과 짝짓기에 몰두했고, 그 과정에서 유전자를 남겼다.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생존에 필요한 행동을 하게 만드는 도구였다.
그래서 쾌감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한 번의 사냥으로 영원히 배부르고 기쁘다면, 아무도 다시 창을 들고 동굴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기쁨이 금방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적응'은 그렇게 생긴다.
여기서 저자의 핵심 주장이 나온다. 승진, 큰 돈, 좋은 집 같은 삶의 조건은 손에 넣는 순간에는 기쁘지만 금방 무뎌진다. 그래서 수십 년의 연구에서도 좋은 조건을 많이 가진 사람이 장기적으로 훨씬 행복하다는 증거는 잘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큰 기쁨 한 번보다 작은 기쁨 여러 번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복권 당첨자 연구, 외모 연구도 같은 방향으로 든다. 남이 보기에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행복과 관련이 없었고, 스스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정도가 행복과 관련이 있었다. 객관적으로 얼마나 가졌느냐보다 가진 것을 얼마나 좋아하느냐가 행복과 더 깊이 연결된다는 결론이다.
월급으로 집 한 채 못 사는데, 경제적 조건이 상관없다고?
책에 대부분 동의하면서도, 이 대목에서만큼은 여백에 이렇게 적었다.
돈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돈은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직장인 월급으로 집 한 채를 살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저자는 "행복은 기쁨의 빈도"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 빈도를 누리려면 기본 조건이 먼저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매달 생활비를 계산하느라 머리가 꽉 찬 사람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자주 느껴라"는 말은 잘 들어오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럴 여유조차 없다.
저자는 사람들이 인생의 많은 시간을 부와 성공을 갖추는 데 쓰는 이유가 "그걸 가져야 행복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렇게 묻고 싶었다. 그렇게 살아야 별걱정 없이 살 수 있는데,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걸까?
저자에 따르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물질적 풍요"라고 답한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가 한국이다. 저자는 이걸 경제 상태가 아니라 문화적 가치의 문제로 본다. 남에게 보이는 화려한 겉옷을 입어야 행복하다는 믿음이라는 것이다.
일부는 동의한다. 우리는 서로 너무 비교한다. 쟤는 나보다 잘살고, 좋은 직장에 다니고, 좋은 집에 산다. 비교하는 동안에는 무엇을 가져도 만족할 수가 없다.
책은 경제 수준이 훨씬 낮은 나라 사람들이 한국보다 행복하다는 예를 든다. 다 같이 넉넉하지 않은 사회와, 같은 동네 안에서도 격차가 눈에 보이는 사회는 다르다. 한국 사람들이 돈에 매달리는 건 허영만이 아니라, 격차가 너무 선명하게 보이는 사회에서 생긴 불안이라고 생각한다.
찬물 꼭지 비유를 읽으니, 내 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반박을 잔뜩 적어 놓고 책을 다시 넘기다가, 앞에서 대충 읽고 지나간 비유 하나에서 멈췄다. 저자가 '행복은 소유'라는 생각의 첫 번째 맹점으로 든 이야기다.
저자는 불행하지 않은 것과 행복한 것은 다르다고 말한다. 생수 한 병은 갈증의 고통을 없애 주지만, 갈증이 가신 사람에게 물은 더 이상 행복을 주지 못한다. 그리고 이렇게 비유한다.
우리가 인생에서 추구하는 많은 삶의 조건들은 샤워기의 찬물 꼭지와 비슷하다. 물을 덜 차게, 즉 삶을 덜 불편하게 만드는 효과는 크지만, 물을 뜨겁게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
최고로 불행한 상태를 -10, 중립을 0, 최고로 행복한 상태를 +10이라고 하면, 저자는 불행을 줄이는 요인과 행복을 늘리는 요인이 서로 다르다는 게 정서 학자들의 중요한 발견이라고 말한다. 아,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이거였구나 싶었다.
내가 "월급으로 집 한 채 못 사는데"라고 했을 때 말하고 싶었던 건 -10에서 0으로 가는 이야기였다. 집세 걱정, 생활비 걱정, 아플 때 병원비 걱정. 이런 찬물을 잠그는 데는 돈이 결정적이다. 저자도 그걸 부정하지 않는다. 조건이 "삶을 덜 불편하게 만드는 효과는 크다"고 분명히 썼다.
저자가 말한 건 그다음이다. 0에서 +로 올라가는 일, 물을 따뜻하게 만드는 일은 다른 꼭지에서 나온다는 것. 나는 "돈이 필요하다"고 반박했고, 책은 "돈만으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둘은 부딪히고 있던 게 아니라, 각자 다른 꼭지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래서 행복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두 꼭지 모두 다!
결론은 둘 다 필요하다는 것이다. 찬물 꼭지를 잠그는 일과, 뜨거운 물 꼭지를 여는 일.
찬물 꼭지는 불행을 덜어 주는 조건
월급, 집, 건강처럼 일상의 불편과 고통을 줄여 주는 것들이다.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기쁨을 느낄 자리 자체가 좁아진다. 그러니 "돈은 행복과 상관없다"는 말을 듣고 조건을 갖추려는 노력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그건 찬물을 잠그는 일이다.
뜨거운 물 꼭지는 기쁨의 빈도
저자는 이 꼭지의 핵심이 사람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느끼는 가장 큰 기쁨도, 가장 큰 고통도 사람에게서 온다. 저자에 따르면 시카고대학 카시오포 교수팀의 연구에서는 현대인의 가장 총체적인 사망 요인이 사고나 암이 아니라 외로움이었다고 한다. 같은 물건을 사도 친구와 놀기 위해 산 게임기가 더 큰 기쁨을 주고, 같은 돈을 써도 물건보다 함께한 경험이 오래 남는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내 일상에도 대입해 봤다. 매일같이 일하는 회사가 괴로운 곳이라면 나는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지금의 내가 꽤 행복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일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연봉이 찬물을 잠가 준다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뜨거운 물을 틀어 준다.
두 꼭지를 구분하면 함정 하나가 보인다. 저자는 행복해지려고 돈에 집착할수록, 정작 행복의 원천인 사람에게서 멀어지는 모순이 생긴다고 말한다. 찬물을 잠그느라 뜨거운 물 꼭지가 있다는 걸 잊는 것이다. 찬물을 다 잠근 뒤에도 여전히 춥다면, 아마 뜨거운 물을 한 번도 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행복을 사진 한 장으로 요약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 행복과 불행은 이 장면이 가득한 인생과 그렇지 않은 인생의 차이라고 한다.
당신의 행복 압정은 무엇인가?
저자는 불행한 사람에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하는 건, 손에 못이 박힌 사람에게 "아프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행복은 생각이 아니라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행복 압정을 뿌려 두라고 한다. 집 안 곳곳에 압정을 뿌려 놓으면 가족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듯, 일상 곳곳에 작은 즐거움을 뿌려 두면 기쁨을 밟을 확률이 높아진다. 저자의 압정은 친구, 평양냉면, 커피, 메시의 패스, 바흐, 좋은 책, 새로운 경험, 운전하며 떠나는 여행이다.
내 압정을 적어 보면 이렇다. 아이와 함께하는 행복한 일상, 잘 맞는 동료와의 아이디어가 샘솟는 회의, 피아노 연주, 독서가 주는 몰입감.
행복은 빈도라는 말에 동의한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월급으로 집 한 채는 사고 싶다. 그건 욕심이 아니라 찬물 꼭지를 잠그는 일이니까! 다만 찬물을 다 잠글 때까지 뜨거운 물을 트는 일을 미룰 필요는 없다. 집 장만은 오래 걸려도, 압정은 오늘 저녁에도 하나 뿌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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