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을 하다보면, 결국은 '브랜딩이 중요하다'고들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왜 물건에 실제 기능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까.
왜 같은 재질로 만든 가방인데 어떤 것에는 수백만 원을 지불할까.
왜 특정 화장품을 사면서 자신을 잘 가꾸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아이를 위한 상품을 고르면서 좋은 부모가 되었다고 생각할까.
어떤 브랜드의 로고는 어떻게 취향과 계층, 가치관과 정체성까지 대신 말하게 되었을까.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으며 마케팅과 브랜딩 관점에서도 많은 통찰을 얻었다.
저자는 인간이 거대한 집단을 이루고 협력할 수 있었던 이유를 수많은 사람이 함께 믿는 질서에서 찾는다. 돈과 국가, 종교와 회사, 법과 권리는 자연 속에 원래 존재하던 물질이 아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고, 그 믿음에 따라 행동하면서 현실의 힘을 갖게 된 것이다.
만원짜리 지폐는 물질적으로 보면 작은 종이 한 장에 불과하다. 먹을 수도 없고, 추위를 막을 수도 없으며, 그 자체로 집을 지을 수도 없다. 그런데 모두가 그 종이에 만 원의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음식과 옷, 노동과 시간을 교환할 수 있다.
"돈의 힘은 종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신뢰에서 나온다."
이 문장에서, 결국 브랜드도 사람들이 함께 부여한 의미와 신뢰 위에서 현실의 힘을 갖는 존재가 되어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제품만 사지 않는다.
흔히 브랜딩을 단순히 제품 위에 이야기를 덧붙이는 작업이라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제품을 먼저 만들고, 그 위에 멋진 이름과 로고, 슬로건과 서사를 씌운다. 그러나 진정한 브랜딩은 단순히 제품에 이야기를 얹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이미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 안에 들어간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가지고 살아간다.
책을 사는 사람은 종이를 사는 것이 아니다. 더 많이 알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가능성을 산다.
아이의 교육 상품을 고르는 부모는 정보만 사는 것이 아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놓치지 않았다는 안도감까지 함께 산다.
예쁜 원피스를 사는 사람은 그저 옷을 사는 것이 아니다. 남들에게 보여질 내 모습을 상상하며 산다.
이런 면에서 소비는 단순히 물건을 소유하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표현하는 행위다. 그래서 마케팅에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고객은 '이 제품을 통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에 대한 것이다.
저자는 돈은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보편적인 상호 신뢰 체계라고 이야기 한다. 서로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같은 화폐의 가치를 믿으면 거래할 수 있다.상대의 종교와 정치적 신념, 성격과 과거를 몰라도 돈의 가치를 공유한다면 협력이 가능하다.
브랜드 역시 이와 같다. 처음 보는 제품을 살 때 소비자는 모든 정보를 직접 검증할 수 없다. 원료가 정말 좋은지, 생산 과정이 안전한지, 회사가 약속을 지킬지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 결국 어느 순간에는 신뢰에 기대어 선택한다. 진정한 브랜드의 가치는 오랜 시간 축적된 기대와 신뢰에서 나온다.
광고 한 번으로 관심을 끌 수는 있다. 할인으로 구매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신뢰는 한 번의 캠페인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제품이 광고에서 한 약속과 같아야 한다. 고객센터의 말투와 반품 과정, 배송 알림과 패키지의 작은 문장까지 같은 태도를 보여야 한다.말과 행동이 오래 일치할 때 사람들은 브랜드를 하나의 인격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브랜드를 만든다는 말은 사람들이 안심하고 선택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함께 믿는 이야기를 통해 사회를 만들었다.
그 이야기는 낯선 사람들을 연결하고 거대한 협력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같은 능력은 계급과 차별, 가부장제와 인종주의처럼 사람을 억압하는 질서를 만드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어떤 이야기는 사람을 살아가게 했고, 어떤 이야기는 사람을 오랫동안 정해진 자리에 묶어두었다.
마케팅도 이 힘에서 자유롭지 않다. 브랜드는 끊임없이 삶의 기준을 제안한다.
이것이 더 나은 삶이다. 이렇게 관리하는 사람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 정도는 해줘야 좋은 부모다. 이런 취향을 가져야 세련된 사람이다. 이 상품을 선택하는 사람이 더 현명하다. 요즘 이 정도는 다 한다.
이런 메시지가 반복되면 어느 순간 사회가 만든 기준이 개인의 욕망처럼 느껴진다.
원래는 필요하지 않았던 물건이 없으면 불안해지고, 관심 없던 외모가 갑자기 결핍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던 사람이 자기 삶이 뒤처졌다고 느낀다. 부모의 사랑은 구매력으로 측정되고, 자기 관리는 끝없이 더 나은 상태를 요구하는 의무가 된다.
인간은 의미를 믿는 존재이기 때문에 마케팅은 강력하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로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사람들의 욕망과 불안을 읽는 것은 마케터의 능력이다. 하지만 그 불안을 얼마나 키울 것인지는 마케터의 선택이다. 좋은 마케팅은 고객의 불안을 이해하지만, 불안을 부풀려야만 작동하지 않는다. 죄책감을 자극하지 않고도 선택의 이유를 만들 수 있다. 부족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사게 만드는 대신, 이미 충분히 고민한 사람이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힘을 어디까지 사용할 것인가이다.
또, 문자와 기록 체계가 인간의 사고방식을 바꾸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인간은 세계를 관리하기 위해 사람과 재산, 세금과 토지, 노동과 빚을 항목으로 나누기 시작했다. 복잡한 현실은 행정과 숫자가 다룰 수 있는 칸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날 마케팅도 사람을 끊임없이 나눈다.
성별, 연령, 거주 지역, 관심사, 유입 경로, 구매 횟수, 객단가, 장바구니 이탈률, 클릭률, 전환율.
분류는 필요하다. 데이터를 보지 않고 사업을 할 수는 없다. 숫자 덕분에 막연한 감이 아니라 실제 행동을 바탕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데이터가 정교해질수록 사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쉽다. 데이터 안에서는 꽤 구체적인 고객처럼 보이지만, 그 사람이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왜 상품 페이지를 오래 바라봤는지, 무엇이 마음에 걸려 결제를 멈췄는지는 알 수 없다. 숫자는 행동을 보여주지만, 삶의 맥락까지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마케터에게 필요한 것은 데이터를 거부하는 태도가 아니라, 데이터가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상상하는 힘이다.
고객을 세분화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흩어진 정보를 다시 한 사람의 삶으로 이어 정리하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클릭률을 보면서도 왜 클릭했는지 묻고, 이탈률을 보면서도 어디에서 마음이 멈췄는지 생각해야 한다.
마케팅에서 한계를 느낄 때 인문학을 공부하라는 말을 전부터 들어왔다.
예전에는 그 말을 조금 막연하게 받아들였다. 철학이나 역사, 문학을 읽는다고 당장 광고 성과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전환율을 높이는 공식이 나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인문학이야 말로 마케팅과 브랜딩을 이해하는 근본적인 학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믿는지, 자신이 속한 집단에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왜 사실보다 의미에 더 크게 움직이는지, 왜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을 소비를 통해 확인하는지 등... 전부 인류의 역사를 공부하면 알 수 있다. 인문학은 광고 기술에 대해 알려주지 않지만, 사람을 단순한 구매자로 보지 않게 한다. 한 사람의 선택 뒤에 있는 불안과 욕망, 사회적 기준과 관계, 자기 서사를 보게 한다. 그리고 브랜드가 사람들의 삶 안에서 어떤 의미를 차지하고 있는지도 생각하게 한다.
기술은 빠르게 변한다. 플랫폼도 바뀌고, 알고리즘도 달라지고, 새로운 도구가 계속 등장한다.
그러나 인간이 인정받고 싶어 하고, 불안을 줄이고 싶어 하며, 자신이 속할 이야기를 찾는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마케팅이 다루는 대상은 결국 인간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이 지닌 가장 강력한 능력은 이야기를 만들고 함께 믿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명도 그 힘으로 만들어졌고, 국가와 돈과 회사도 그 힘으로 유지되었다. 그리고 사람을 차별하고 억압한 수많은 질서도 같은 힘에서 태어났다.
그렇다면 마케터는 단순히 사람의 마음을 잘 읽는 사람에 그치지 않고, 어떤 믿음을 강화할 것인지, 어떤 기준을 사회에 퍼뜨릴 것인지 결정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사람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줄 것인지, 이미 충분히 불안한 사람에게 더 큰 결핍을 심을 것인지, 고객이 스스로 선택하도록 도울 것인지, FOMO로 판단을 밀어 붙일 것인지 등 말이다.
마케팅의 실력은 보통 사람을 얼마나 잘 설득하고 잘 파는지로 판단한다. 그러나 마케팅의 태도는 설득할 수 있음에도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지에서 판가름 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자신이 믿는 이야기에 따라 선택하고 살아간다. 그렇다면 마케터는 자신이 만든 이야기가 어떤 소비를 만드는지만이 아니라, 어떤 사람과 어떤 세상을 만들어가는지도 함께 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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