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 기획자, 디자이너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후지하라 가즈히로, <책을 읽는 사람만이 손에 넣는 것>을 읽고 든 생각

이 글 한눈에 보기

  • 함께 일하며 합이 잘 맞았던 사람들은 모두 책을 읽는 사람이었다. 관심사가 넓어 어떤 주제로도 토론이 되고, 아이디어가 틀에 갇히지 않았다.

  • 마케팅·기획·디자인은 정답이 없는 일이라, 여러 분야의 지식을 조합하는 '정보편집력'이 필요하다. 독서는 그 재료를 모으는 가장 싼 방법이다.

  • 책 속 사례를 우리 브랜드에 대입해 보는 습관이 쌓이면, 기획도 AI에게 던지는 질문도 깊어진다.

마케터, 기획자, 디자이너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사실 이 책은 가벼운 동기부여용으로 샀다. 독서의 장점을 늘어놓은 책을 보면 뿌듯해져서 더 열심히 독서를 할 것 같아서였다. 내용은 쉬운 자기계발서로도 볼 수 있는데, "책을 읽는 것만으로 상위 10%"라는 말은 내가 싫어하는 성공팔이들이 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래도 책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읽는 내내 내가 왜 책을 읽게 됐는지, 독서를 어떤 도구로 써 왔는지 돌아보게 됐다.

나는 최근 3년 동안 약 140권을 읽었다. 그 전에는 평생 합쳐 20권 정도였으려나. 내 독서노트에 기록된 완독 책은 142권이다. 가장 많이 읽은 분야는 마케팅(38권)이지만, 그다음은 소설(27권)과 심리(15권)이고, 사회·인문학·경제·기획 책이 뒤를 잇는다.

나와 합이 잘 맞았던 사람들의 공통점

지금까지 함께 일했던 사람들 중 나와 합이 잘 맞는다고 느꼈던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전부 취미가 독서였다. 아니면 지금은 잠시 독서를 쉬고 있더라도, 예전에 수많은 책을 탐독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확실히 여러 방면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일 이야기를 하다가도 심리, 역사, 사회, 예술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며 다양한 주제로 토론할 수 있다. 아이디어도 틀에 갇히지 않는다. 전혀 다른 분야에서 본 것을 끌어와 지금 문제에 붙이기 때문에, 같은 문제를 놓고도 생각지 못한 방향의 답이 나온다.

일하는 태도에도 공통점이 있었다. 수동적인 사람이 거의 없었다. 시키는 일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문제를 찾았고, "돈 받는 만큼만 일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도 거의 없었다. 돌아보면 다들 사업가 기질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왜 그럴까? 이 책이 그 이유를 꽤 잘 설명해 준 것 같다. 이 글은 그 책을 빌려, 마케터, 기획자, 디자이너 등이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내 경험으로 정리한 것이다.

마케팅·기획·디자인에 왜 '정보편집력'이 필요한가?

마케팅·기획·디자인은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가진 지식을 조합해 모두가 수긍하는 답을 만드는 힘이 필요하다.

저자 후지하라 가즈히로는 이 힘을 정보편집력이라고 부르고, 정해진 정답을 빨리 찾는 정보처리력과 구분한다. 저자의 비유로는 정보처리력은 '퍼즐', 정보편집력은 '레고'다. 퍼즐은 정해진 그림 하나밖에 못 만들지만, 레고는 같은 블록으로 집도 동물원도 만들 수 있다.

구분

정보처리력 (퍼즐형)

정보편집력 (레고형)

하는 일

정해진 정답을 빨리 찾는다

지식을 조합해 모두가 수긍하는 답을 만든다

잘 맞는 문제

시험, 정해진 절차

캠페인 기획, 브랜딩,

디자인처럼 답이 여러 가지인 문제

마케터가 매일 하는 일이 정확히 레고다. 같은 제품, 같은 예산이라도 누가 어떤 조각을 가져와 맞추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그 조각을 가장 싼값에 많이 모을 수 있는 곳이 책이다. 저자는 독서를 "책을 쓴 사람의 뇌 조각을 내 뇌에 연결하는 도구"라고 표현한다.

나는 무언가 부족하면 그걸 무엇으로 채울지부터 생각한다. 요즘은 AI에게 어떻게 채워 달라고 할지를 먼저 떠올린다. 이제 차이는 더 많은 기술을 습득하는 것보다, 여러 분야에서 본 조각을 문제에 가져와 붙일 줄 아는 습관에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 사람과 일하면 무엇이 다른가?

책을 읽는 사람과 일하면 대화가 넓게 통하고, 각자 맡은 역할보다 일 전체를 보고 움직인다.

저자는 여러 분야를 읽어 생긴 겹치는 영역을 뇌 안의 공유 도메인이라고 부른다. 세계관이 넓어지면 상대와 공유하는 폭이 커지고, 상대가 내 편이 된다는 것이다. 이 개념을 읽고 나서야 내 경험에 이름이 붙었다. 합이 잘 맞았던 사람들과는 공유 도메인이 컸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오래 가지고 있던 생각 하나도 바뀌었다. 나는 나와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아니었다. 내 관심사를 적어 보면 이렇다.

  • 클래식 피아노 전공

  • 덕질을 하다가 빠진 뮤지컬

  • 마케팅을 하며 공부할 수밖에 없었던 여러 산업군에 대한 이해

  • 인간 심리, 역사, 사회

  • 요즘 건드리기 시작한 철학과 소설

  • 법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

나는 이것저것 건드리며 잡부처럼 살아왔고, 독서가 그 폭을 더 넓혔다. 그러니 누구를 만나도 조금씩 겹치는 게 있었던 것이다.

사업가 기질에 대해서도 힌트가 있었다. 저자는 대학 시절 <피터의 원리>를 읽고, 조직 안에 있으면서도 자영업을 하는 감각으로 일하는 "조직 내 개인"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한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회사가 정해 준 역할 하나로 자신을 정의하지 않는다. 여러 사람의 인생을 책으로 미리 살아 봤기 때문에, 지금 하는 일을 더 큰 그림 안에서 본다.

책에서 읽은 것을 일에 어떻게 쓰는가?

책에서 읽은 걸 일에 써먹는 것은 나에게 특별한 일이 아니라 거의 매일 하는 일이다.

책 제목

책에서 본 것

일에 적용한 것

<천 개의 파랑> (소설)

다리를 잃은 은혜에게 필요했던 건 몇천만 원짜리 기계 다리보다 완만한 경사로와 여유 있는 보행자 신호였다.

기획할 때 "우리가 팔고 싶은 화려한 기능"과 "고객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같은지 먼저 따져 본다

<폭풍의 언덕> (소설)

불편한 이야기를 작가가 직접 하지 않고 가정부 넬리의 입을 빌려 전한다.

브랜드가 직접 말하면 거부감이 드는 메시지는 고객 후기나 관찰자 같은 제3자의 입으로 전한다

<휴먼카인드> (인문)

기대받는 사람은 그 기대만큼 해낸다.(피그말리온 효과)

고객을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 "이미 더 나은 선택을 하려는 사람"으로 대하는 문장을 쓴다. 리뷰 답변도 감사 인사로 끝내지 않고, 고객의 경험이 브랜드에 도움이 됐다는 감각을 준다

<스틱!> (마케팅)

숫자보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마음을 움직인다.

누적 고객 수 대신 한 고객의 장면을 보여 준다. 그 이야기는 지어내지 않고 리뷰와 CS에서 찾는다

마케터의 서재가 마케팅 책으로만 채워지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고객은 마케팅 책 속이 아니라 소설과 사회와 역사 속에 산다.

독서는 어떻게 타깃을 이해하는 힘이 되는가?

책을 읽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입장과 역할을 머릿속에서 체험해 보는 일이고, 그게 곧 소비자를 이해하는 훈련이다.

저자는 정보편집력을 키우는 다섯 가지 힘으로 소통, 논리, 시뮬레이션, 롤플레잉, 프레젠테이션을 꼽는다. 그중 마케터에게 가장 직접적인 건 두 가지다.

  • 롤플레잉하는 힘: 타인의 시점을 얻으면 세계관이 넓어지고 사고가 유연해진다. 소설 속 인물, 전기 속 사람의 선택을 따라가 보는 것은 고객 페르소나의 하루를 상상하는 것과 같은 근육을 쓴다.

  • 프레젠테이션하는 힘: 저자는 프레젠테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먼저 상대를 그려 보고, 상대가 나와 다른 세계관으로 살아간다는 걸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보기엔 이건 프레젠테이션 기술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타깃을 이해하는 능력 그 자체다.

엄마가 되고 나서야 엄마 고객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던 것처럼, 직접 겪지 않은 삶은 잘 보이지 않는다. 책은 그 삶을 빌려 와 보게 해 준다.

나에게 독서는 사람 보는 눈을 기르는 도구이기도 했다. 저자가 병을 계기로 책을 읽기 시작했듯, 나도 인생이 크게 흔들린 시기에 책에 매달렸다. 그 때 왜 그랬는지 돌아보며 사람을 보는 눈과 분별력을 기르려고 더 읽었다. 사람 보는 눈은 곧 고객 보는 눈이다. 사람이 어떤 말에 흔들리고 어떤 선택을 하는지는 내가 직접 흔들려 본 뒤에 훨씬 잘 보였다.

마케터가 바로 써먹을 수 있는 독서 습관 3가지

1. 책 속 사례를 우리 브랜드에 대입하고, AI 질문으로 바꾼다.
책을 읽다 브랜드 사례가 나오면 습관처럼 우리 브랜드에 대입해 본다. 이 회사는 이 상황에서 이렇게 했는데, 우리라면? 우리 고객에게도 통할까? 이렇게 대입해 본 경험이 쌓이면 AI에게 묻는 질문도 달라진다. "좋은 카피 써 줘"가 아니라 "형용사 없이 장면만으로 이 제품의 편안함을 보여 주는 카피를, 출산 후 지친 엄마의 아침 장면으로 써 줘"라고 묻게 된다. AI는 이미 수많은 책을 학습했지만, 그 안에서 무엇을 꺼내 올지는 묻는 사람이 정한다.

2. 베스트셀러는 "왜 팔렸나"로 읽는다.
저자는 베스트셀러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고, 잘 팔리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마케터에게 이건 시장 조사다. 요즘도 돈 이야기를 다룬 책이 계속 잘 팔린다는 것만 봐도, 사람들이 지금 무엇을 불안해하는지 보인다. 다만 요즘은 가짜 마케팅으로 순위에 오르는 책도 있으니, 베스트셀러는 "좋은 책 목록"이 아니라 "사람들이 반응한 것의 목록"으로 읽는다.

3. 일로 만날 사람의 책을 읽고 만난다.
저서가 있는 사람과 일하게 되면 그 사람의 책을 읽고 만난다. "책 잘 읽었습니다"로 끝내지 않고 "책에 이런 문장이 있었죠" 하고 구체적으로 꺼내면 상대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상대가 세상에 내놓은 생각을 정확히 짚어 주는 것이 신뢰를 여는 열쇠다. 이것이야 말로 대화 기술 책에는 잘 안 나오는 진짜 꿀팁이다.

마치며: 책을 읽는 동료가 되고 싶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 상위 10%"라는 저자의 말은 조금 거슬렸다. 다 읽고 난 지금도 내가 상위 10%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다만 하나는 확실해졌다. 내가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은 책을 읽는 사람이고,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동료이고 싶다는 것.

저자는 읽은 책이 300권을 넘기면서 비로소 자기 의견이 생겼다고 한다. 나는 이제 142권이다. 그래서 독서의 목표를 "많이 읽기"에서 "내 의견 만들기"로 바꿔 보려 한다.

자신의 의견이란 쓰고 말하기를 반복하는 사이에 점차 강고하게 진화한다.

이 홈페이지에 글을 쌓는 것도 그래서다. 저자는 회사라는 큰 산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산을 만들어 두라고 하는데, 나에게는 읽고 생각한 것을 꼬박꼬박 남기는 이 기록이 그 산이다.

기획을 하는 사람이라면 책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 더 똑똑해 보이려고가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가장 저렴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을 읽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대화가 넓어지고, 아이디어가 틀을 벗어나고, 일이 훨씬 재미있어진다. 내가 그런 동료들을 만나 왔던 것처럼.


자주 묻는 질문

Q. 마케터에게 독서가 왜 필요한가요?
마케팅은 정답이 없는 문제를 푸는 일이라, 여러 분야의 지식을 조합해 답을 만드는 힘(정보편집력)이 필요하다. 독서는 그 재료를 모으는 가장 싼 방법이고, 다른 사람의 시점을 얻어 타깃을 이해하는 훈련이 된다.

Q. 책을 읽는 사람과 일하면 무엇이 좋은가요?
관심사가 넓어서 일 이야기가 다양한 주제로 확장되고, 아이디어가 틀에 갇히지 않는다. 내 경험으로는 합이 잘 맞았던 동료들은 모두 독서가 취미였고, 수동적이지 않으며 사업가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Q. 마케터·기획자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하나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하다. 내 경우 일에 가장 많이 써먹은 인사이트는 마케팅 책보다 소설에서 나왔다. 타인의 입장을 체험하려면 소설·논픽션·전기가 좋고, 시장을 읽으려면 베스트셀러를 "왜 팔렸는지" 보는 눈으로 읽는다.

Q. AI 시대에도 마케터가 책을 읽어야 하나요?
읽어야 한다. AI는 이미 수많은 책을 학습했지만, 그 안에서 무엇을 꺼내 올지는 묻는 사람이 정한다. 책에서 본 사례를 자기 브랜드에 대입해 본 경험이 많을수록 질문이 구체적이고 풍부해지고, AI가 꺼내 오는 답도 깊어진다.

Q. 정보편집력이란 무엇인가요?
후지하라 가즈히로가 <책을 읽는 사람만이 손에 넣는 것>에서 제시한 개념으로, 익힌 지식과 기술을 조합해 모두가 수긍하는 답을 만들어 내는 힘이다. 정해진 정답을 빨리 찾는 정보처리력과 구분된다.


글쓴이 차은재 - 브랜드 마케터.

책에서 발견한 사람의 심리를 소비와 브랜드로 연결하는 일을 한다. 직접 만든 독서노트 어플에 꾸준히 완독 기록을 남기며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어요.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어요 · 0/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