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로, 여자로, 마케터의 렌즈로 읽은 <안나 카레니나>

걸작임에는 불명하나, "미쳤다!" 소리가 나올 정도는 아니었다.

엄마로, 여자로, 마케터의 렌즈로 읽은 <안나 카레니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아는 동생에게 선물 받았다. 책을 선물 받았다는 기쁨과 동시에 독서 초보인 내가 러시아 고전, 그것도 엄청나게 두꺼운 세 편의 장편 소설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걱정을 안 했다면 거짓말이다.

그리고 같은 인물을 성으로, 이름과 부칭으로, 애칭으로 각각 다르게 부르는 러시아 이름의 특징 탓에, 초반에는 인물 관계도를 클로드로 그려 컴퓨터 화면에 띄우고 읽어야 했다.

그렇게 10월 3일에 시작해 11월 7일까지. 세 권을 다 읽었다. 거의 2,000쪽이다.


<안나 카레니나> 읽어보지는 않았어도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독서와 거리가 먼 사람도 제목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명성에 걸맞게, 왜 걸작인지 몇 가지로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대단한 작품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정말 마음으로, "미쳤다!" 싶을 만큼 와닿지는 않았다. 농업 토론, 귀족 선거, 8부의 철학처럼 이해하기 어렵고 지루한 구간도 많았다. 이 소설에 진심으로 감탄하고 사유하기에는 내가 아직 너무 부족한 것 같다.

대신 나는 보통의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렌즈로 이 책을 읽었다. 나는 엄마로서, 여자로서, 신앙을 고민하는 사람으로서, 마케터로서 이 소설을 읽으며 기억에 남았던 장면들을 정리했다.

<안나 카레니나>는 어떤 소설인가?

제목은 안나지만, 이 소설은 두 사람이 같은 질문에 정반대의 답을 내는 이야기다.

하나는 고위 관료 카레닌의 아내 안나가 젊은 장교 브론스키를 만나 모든 것을 걸고 사랑을 택하는 이야기다. 다른 하나는 시골 지주 레빈이 청혼을 거절당한 상처를 안고 땅과 노동 속에서 살다가, 키티와 결혼하고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를 끝까지 묻는 이야기다. 안나의 오빠 스티바와 그의 아내 돌리가 두 이야기를 연결한다.

결말은 읽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이야기는 일찍 끝났다. 안나는 7부에서 끝나고, 마지막 8부는 통째로 레빈의 것이다. 다 읽고 나니 진짜 주인공은 레빈이었다. 당시에도 "두 이야기가 따로 논다"는 비판이 있었다고 하는데, 톨스토이는 둥근 천장처럼 이음매가 보이지 않게 이었다고 답했다고 한다.

구분

안나

레빈

삶의 이유

브론스키의 사랑

땅, 가족, 이웃을 위한 일

반복해서 했던 질문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왜 사는가"

최후

기차역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앞으로도 실수하겠지만 삶에 선의 의미를 불어넣을 수 있다고 말한다

엄마의 눈으로 읽으면서 본 것

가장 먼저 보인 건 어른들의 선택 사이에 남겨진, 잘못이 없는 아이들이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안나의 아들 세료자다. 엄마가 떠난 뒤 어른들은 세료자에게 엄마가 죽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세료자는 믿지 않는다. 산책할 때마다 지나가는 여자들 사이에서 엄마를 찾고, 생일날 아침 몰래 찾아온 엄마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알고 있었어. 오늘은 내 생일이잖아. 난 엄마가 올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세료자 곁에는 그 마음을 알아주는 어른이 아무도 없었다. 아빠가 훈장을 받아 기쁘냐고 다가갔다가 훈계를 듣고, 다친 마음은 그대로 둔 채 공부만 강요받는다. 몇 년 뒤 엄마 이야기를 피하던 세료자는 울고 있는 자기에게 다쳤냐고 묻는 가정교사에게 "날 좀 내버려 두세요!"라고 소리친다. 그 시대에는 아이에게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지식이 없었겠지만, 그래도 너무 잔인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서 더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나는 특히 안나에 대해서는 동정심이 들지 않았다. 그녀는 사랑에 눈이 멀어 하나뿐인 아들 세료자를 두고 떠났고, 브론스키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은 유모에게 맡긴 채 거의 돌보지 않았다. 나중에는 딸을 보고도 자기 아이 같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카레닌이 그 아기를 돌보는 장면이 감동적이었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남겨진 아이들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

그 시대에 여자로 산다는 건 어떤 일이었을까?

당대에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왜 그렇게 살아야 했을까.

1권에서 키티가 사교계에서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을 남자들의 구혼으로 정의하는 것부터가 거슬렸다. 여자의 성공이 능력 있는 남자의 구혼인가? 직업을 가질 수 없던 시대에 결혼은 여자의 인생 전체를 정했고, 사교계 데뷔는 사실상 결혼 시장이었다.

똑같은 잘못을 해도 대가가 달랐다. 똑같이 불륜을 저지르는데 브론스키는 사교계에서 여전히 환영받았고, 안나는 가족에게도 사교계에서도 외면당했다.

그리고 출산. 당시 러시아 사회에서는 피임은 신의 뜻에 반하는 엄청난 죄악이었으며,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임신하는 대로 아이를 낳아야 했다 안나는 출산 뒤 산욕열로 죽음의 문턱까지 가고, 진통하는 키티를 지켜보던 레빈은 "사람이 죽어 가는 마당에"라고 언급한다. 그 시대 여자에게 결혼은 죽음을 각오하는 일이었다. 아이를 가졌다고 마냥 기뻐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남성인 톨스토이가 이 시기에 출산의 고통을 이렇게 정면으로 그렸다는 게 놀라웠다. 그의 아내 소피야는 아이를 열세 명 낳았고, 이 소설을 쓰던 몇 해 동안에만 세 아이를 잃었다고 한다. 그 곁에서 톨스토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주인공보다 오래 기억된 인물

나에게는 돌리였다. 동경하던 삶을 직접 보고 나서야 자기 세계가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되는 사람.

돌리는 남편 스티바가 아이들의 가정교사와 바람을 피운 사실이 드러나면서 처음 등장한다. 아이 일곱을 낳아 하나를 잃었고, 살림과 육아는 오롯이 그녀의 몫이다. 남편의 바람, 원치 않는 출산의 반복, 육아에 지칠 대로 지친 사람.

그런 돌리가 혼자 마차를 타고, 브론스키와 살고 있는 안나를 찾아가는 장면이 있다. 마차 안에서 돌리는 처음으로 혼자 생각할 시간을 얻는다.

"그럼 그 모든 것은 과연 무엇을 위한 걸까? 난 단 한순간의 평온도 누리지 못한 채 어떨 때는 임신 때문에, 어떨 때는 수유 때문에 끊임없이 화를 내고 불평을 늘어놓고 스스로도 기진맥진해할 뿐 아니라 남까지 괴롭히면서 이렇게 평생을 살게 될까."

온갖 걱정거리로 자신을 죽이는 세계에서 해방되어 잠시나마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는 표현은, 돌리에게 온전히 혼자인 시간이 그 몇 시간이 거의 처음이었다는 걸 기가 막히게 보여 준다.

돌리는 사랑을 택해 떠난 안나를 부러워한다., 그런데 막상 안나가 사는 모습을 보고 나서는 다시 엄마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안나는 그 화려한 집에서 대화만 이끄는 안주인이었고 약 없이는 잠도 못 잘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안나가 좋아서 갔던 돌리는 그 집에 있을 수록 불편해졌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들판이 보이고 나서야 마음을 놓는다.

엄마라서, 더 돌리의 마음에 공감이 갔다.

레빈은 선한 사람인가?

1권에서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다 읽은 지금은, 좋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솔직하고,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1권의 레빈은 청혼을 거절당하고도 연적에게서 장점부터 찾아내고, 타락한 형을 멸시하지 않고, 자기가 가진 부가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읽을수록 다른 모습이 보였다. 손님 청년 하나 때문에 아내가 혐오스럽다고까지 느낄 만큼 질투하고, 뭐든지 혼자 곡해한다.

8부에서 레빈은 마침내 깨달음을 얻는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절망하던 그가 농부의 무심한 한마디에서 답을 찾고, "이제 모든 게 달라질 거야"라고 다짐한다. 그런데 몇 분 뒤 마부에게 버럭 화를 낸다. 폭풍이 지나간 숲에서는 무사한 아내를 보자마자 "부끄럽지도 않냐, 어떻게 이런 경솔한 행동을 할 수 있어"라고 몰아붙인다. 자기도 비가 올 줄 모르고 비를 맞으며 돌아오던 참이었으면서. (아무리 봐도 이 장면은 이해가 안 됐다)

그렇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레빈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한다. 앞으로도 화를 내고, 논쟁하고, 아내를 탓할 거라고. 그래도 이제 삶의 매 순간은 선의 의미를 지닌다고. 깨달음은 사람을 단번에 바꾸지 않는다. 대신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는 바닥이 되어 준다. 톨스토이가 레빈을 완벽하게 그리지 않았기 때문에, 이 작품이 더 사랑받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가장 신앙인다웠던 무신론자 레빈

레빈은 무신론자이다. 그런데 아내 키티는 생각한다. 저렇게 동정심이 많고, 아이의 마음까지 다칠까 걱정하고, 무엇이든 남을 위해 하는 사람이 어떻게 무신론자일 수 있냐고. 레빈은 창조나 구원 같은 교리는 모르겠다고 한다. 대신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만은 이성이 아니라 삶이 알려 줬다고 말한다.

톨스토이는 신을 믿는다면서 정작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신앙인들의 위선과, 무신론자라 불리는 레빈이 누구보다 이웃을 위해 사는 모습을 대조해서 보여 준다. 그 반대편에는 사랑과 신앙을 말하면서 아이에게 엄마가 나쁜 여자라고 말하고, 엄마와 아들의 만남을 막는 리디야 백작부인이 있다.

톨스토이는 훗날 이런 생각 때문에 교회에서 파문당했다. 원죄와 지옥, 벌주는 신 같은 교리를 거부하고 사람 안에 있는 선을 믿었다고 한다. 신을 무섭게, 인간을 악하게 그리는 세계관이 늘 불편했던 나에게는 레빈의 믿음이 오히려 위로가 됐다. 최근에 읽은 <휴먼카인드>가 생각났다.

마케터가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깨달은 것

마케터로서 얻은 인사이트가 정말 많았다. 이 소설은 사람이 어떤 말에 흔들리고 무엇을 고르는지에 대한 2,000쪽짜리 관찰 기록이다.

소설 속 장면

일에 적용할 것

인물을 "어떤 사람"이라고 설명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 준다. 스티바가 쾌락주의자라고 말하는 대신 굴을 고르는 손짓을 보여 주는 식이다

카피에서 '좋은, 편한, 특별한' 같은 형용사를 지우고 그 자리에 장면을 넣는다

레빈은 가슴이 아파도 연적에게서 장점부터 찾아낸다

경쟁사 분석은 흠을 찾는 일이 아니라 고객이 왜 그쪽을 골랐는지 찾는 일이다

키티에게 레빈과의 미래는 흐릿했고 브론스키와의 미래는 선명했다

상세페이지는 구매한 뒤의 하루를 그림처럼 보여 줘야 한다

일꾼들은 주인 밭에서는 대충 하다가도 자기 밭에서는 새 농법을 신나게 따른다

고객이 직접 효과를 보게 하면, 그게 가장 좋은 후기가 된다

안나는 돌리 아이들이 앓았던 병까지 기억해서 돌리의 마음을 연다

이름을 불러 주는 것보다 고객이 겪은 일을 기억해 주는 것이 마음을 연다

"가장 덜떨어진 아이조차 위선자를 알아본다"

진정성은 숨길 수 없다. 브랜드의 진짜 모습은 가장 작은 접점에서 드러난다

신문이 다들 똑같은 소리를 하자 관심 없던 사람들까지 슬라브 형제를 구하자고 외친다

목소리 큰 소수의 반응을 "모두의 뜻"으로 읽지 않는다. 지금의 이슈몰이도 같은 구조다

우유를 쏟는 아이들에게 훈계만 늘어놓는 돌리

고객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브랜드가 되지 않는다. 말보다 경험이 먼저다

특히 마지막 장면이 와닿았다. 먹을 것이 없어 본 적 없는 아이들에게 "음식을 아껴라"는 말은 닿지 않는다. 고객도 마찬가지다. 그 필요를 겪어 보지 않은 사람에게 설명은 들리지 않는다. 엄마가 되고 나서야 엄마 고객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던 것처럼.


읽는 동안 안나에게 화를 내고, 돌리의 한숨에 공감하고, 레빈에게 실망했다.

엄청난 작품이라고 진심으로 경탄하지는 못했어도, 인물들과는 꽤 깊이 부딪혔다.

아이가 자라고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바뀌면, 그 때는 또 다르게 다가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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